"난 누구를 조롱하려고 여기 온게 아니야.
공동체의 일체감을 보려주려고 온거야.
물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는 어렵단다.
너희들 중 '나라면 분명히 다른 길로 갔을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거다.
그러면 스스로에게 답해봐.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가진 신념을 믿어야 해.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이란 시에서 이렇게 말했단다.
'숲 속 두갈래로 나뉜 길에서, 난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해 걸었어.
그리고 그 길이 나를 다른 삶으로 이끌었네'
이제부터 너희들도 너만의 길을 걸어야해.
방향과 방법은 너희들 마음대로 선택해.
그것이 자랑스럽든, 바보같든간에 말이야.
자, 이제 걸어보아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캡틴, 오 마이 캡틴' 존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한 말입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1989년에 나온 영화입니다. 꽤나 오래됐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기억하는 많은 분들은, 아마 이 영화를 당신의 유년기 때 접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여러분들도 키팅 선생님을 기억하시지요?
배우 로비 윌리엄스는 키팅 선생님 역할을 맡았을 때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 이런 선생님이 나를 가르쳐주길 바랐다"고 말했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키팅 선생님 같은 스승을 만나기를 바라지는 않았나요? 혹은 지금도 그런 스승이 내 삶에 나타나주기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영화에서 키팅 선생님은 전통, 명예, 훈육 등을 가치로 삼고 있는 보수적인 남학생 학교, 웰튼 아카데미에 부임한 영문학 선생입니다. 우리로 따지면 국어 선생님 같은 분이지요. 키팅 선생님은 이 학교 출신입니다. 학생들 입장에서 보면 선생님이자 선배이지요.
키팅 선생님은 첫 수업부터 학교 기준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합니다. 교실이란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교과서에 연연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사진 속 선배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가르침을 전합니다.
바로 카르페 디엠(Carpe, carpe diem) 입니다. '현재를 즐겨라, 너의 인생을 특별하게 만들라'고 내내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 방법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실행방안은 제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학생들이 그 길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쉼없이 이들을 자극하고 그 길로 인도할 뿐입니다.
사전에서 '스승'이란 단어를 찾아보니 공교롭게도 이렇게 풀이됩니다.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
키팅은 학생들에게 카르페 디엠을 가르치지만 어떻게 하면 카르페 디엠을 할 수 있는 실행방식을 말해주진 않습니다. 그 실행방식은 젊음의 특권과 방황에서 얻어지는 자신의 신념에서 비롯된다고만 할 뿐이지요.
지난 2008년에 발간된 '무지한 스승-지적 해방에 대한 다섯 가지 교훈'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자크 랑시에르라는 교육철학자입니다. 이 책이 소개하는 '무지한 스승'은 구구절절한 훈육과 설명으로 학생들을 선생님 없이는 공부할 수 없는 피교육자로 만드는 스승이 아닙니다. 이 무지한 스승은 학생들 스스로 배우고 주장할 능력이 있음을 알게 해주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이 무지한 스승은 학생들을 '뛰어난 학생'과 '열등한 학생'으로 구별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개개인 능력차를 떠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능동적으로 찾을 수 있는 평등한 인격체'일 뿐입니다.
최근 EBS에서 방영한 '60분 부모-mother shock' 편을 보고 꽤 충격을 받았습니다. 프로그램에서 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한국 부모와 아이, 그리고 미국,영국 부모와 아이들을 나눠 감독관 입회 하에 특정 문제를 풀게 시켰습니다. 실험 규칙은 단 하나였습니다. "부모님은 아이에게 문제 답을 직간접적으로 알려주어서는 안된다."
실험이 시작되자 극명한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한국 부모들은 쉬운 문제를 풀지 못하는 아이에게 힌트를 주지 못해 안달이 났습니다. 감독관이 보고 있는데도 간접적으로라도 문제의 답을 표정 손짓 발짓으로 알려주려고 합니다. 아이는 문제가 잘 풀리지 않자, 부모의 얼굴을 더 자주 쳐다 봅니다. 이제 감독관이 잠시 자리를 뜹니다. 그러자 한국 부모들, 여지 없이 답을 가르쳐 줍니다. 어떤 부모들은 답을 가르쳐주는 것도 모자라 직접 답을 써주기도 합니다.
반면 미국 영국 부모들은 마냥 기다리고 있습니다. 감독관의 자세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이가 부모의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봐도 그저 기다릴 뿐입니다. 역시 감독관이 잠시 자리를 뜹니다. 외국 아이가 부모에게 이거 어떻게 풀어야하는지 물어봅니다. 부모는 대답합니다. "넌 할 수 있단다. 천천히 답을 생각해보렴." 시간은 오래걸리지만 부모는 그저 기다립니다.
키팅 선생님과 무지한 스승, 그리고 영미권의 부모.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피교육자에게 구체적인 문제의 해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보다는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에서 알아야할 삶의 교훈들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기다리며 지켜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말입니다. 그 시간을 함께 기다리고 인내하며 인도하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는 '선생은 많지만 스승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선생님들은 거룩한 스승조차 하기 힘든, 삶의 디테일한 목표와 방향과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아이가 해답을 찾기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답을 가르쳐줘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의 실험 부모들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교육은 이렇듯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지향하고 있습니다. 시간 혹은 금액 대비 효과라는 측면에서 교육의 효율을 따집니다. 짧은 시간에, 적은 교육비로 최대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당연히 시험 문제를 잘 맞히게 하는 선생이 좋은 선생일 수 밖에 없을테지요. 더 큰 틀에서 인성을 가르치고, 아이들의 해답을 존중하며, 학생들의 자존심과 자존감을 찾아줄 수 있는 스승을 바란다는게 어쩌면 한국에서는 욕심일지도 모릅니다. 불완전 막장 경쟁인 판국에 무슨 배부린 소리냐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효율적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성장해 청춘이 되고 어른이 될때는 어떤 부작용이 생길 수 수 있을까요.
앞선 언급해드린 'EBS 60분 부모'에 관련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한국 중고등학생들은 부모가 아침에 잠에서 깨워야 일어나고, 아침밥을 차려줘야 먹고, 밤늦은 시간 학원 앞에서 자가용에 실어 데려와야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 아이가 커서 대학생이 되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가 되어도 부모에 대한 의존도는 낮아지지 않습니다. 프로그램에서 더 큰 문제로 지적한 것은 이렇게 자식을 키운 부모의 경우,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해 독립하더라고, 여전히 자식의 삶에 관여해 결정력을 행사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해 전전긍긍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아이가 성장해 어른이 되었을때, 고난과 실패를 경험하게 되면 자연스레 이 아이는 실패를 잘 극복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할 뿐더러,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행태를 보인다고 합니다.
저 역시 효율적인 한국식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니 꿈이 뭐니, 넌 좋아하는게 뭐야, 공부는 왜 하니?" 같은 질문은 받아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저 공부하라니 공부하고, 공부하니 성적 올라 칭찬 받으니 다시 공부할 뿐이었지요. 공부를 잘해 좋은 성적을 받는 것 이외에 정작 선택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별로 없었고, 선택할 자유나 권리를 생각하거나 고민할 수도 없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보낸 하루하루가 비록 당사자에게는 치열하게 노력한 하루였지만, 미래를 자발적으로 준비하고 설계하게 할 수 있는 건강한 하루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부모님과 선생님과 교수님, 학원 강사와 인생 선배들이 '내 말 들어. 법대 나와서 사법시험 통과하면 만사형통이야.. 공무원이 최고야.. 의대 가서 의사하면 돈 많이 벌고 편하게 살 수 있어'라는 말을 듣고 그 길을 가 본들 그 길의 끝이 행복일 보장은 어디에도 없고, 그 길을 가라고 말해준 사람들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타의적인 하루하루는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기에, 결과가 좋지 못하거나 방법상 길을 잃게 될때 다시 재기하기 힘든 좌절에 빠지게 만듭니다. 그리고 '부모님 선생님 말씀 잘들으면서 공부 열심히 했을뿐인데 왜 내게 이런 고난이 닥친걸까'라는 한풀이가 출구 없는 미로 속에 뱅뱅 돕니다.
위에 언급했듯이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튼 선생님이 영화내내 아이들에게 강조한 말이 있었습니다. 바로 '카르페 디엠' 입니다.
오늘을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채워나가는 에너지가 우리를 내일 그리고 모레, 그리고 그보다 먼 미래를 인도합니다.
그 선택의 과정에서야 많은 청춘들이 비로소 자신의 선택과 결정을, 자신의 책임과 권리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주입받아왔고, 주입받고있는 오늘의 많은 친구들에게 키팅 선생님의 수업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저 역시도 하루 하루를 즐기고 선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키팅 선생님 같은 스승을 만날 수 있길 바래봅니다. '세상이 스승이다'라는 모토로 살고는 있지만 세상이란 스승은 좀 많이 자극적이십니다^^
"오늘을 즐겨야 한단다. 시간이 있을때 장미 봉우리를 수확해야해.
왜 시인이 이런 말을 했을까?
왜냐면 우리는 누구나 언젠가는 죽기 때문이란다.
믿거나 말거나 우리 모두는 언제가 숨어멎고 몸은 차갑게 식어가.
자, 너희들 모두 이리와서 너희들의 과거 얼굴을 보거라.
'오늘을 즐기라'고 말한 시인도 한때는 너희처럼 머리도 길고, 젊고 패기만만하고
세상을 손에 넣어 위대한 일을 할 거라 믿었을 거야.
너희들처럼 눈동자에는 희망이 가득차있었겠지.
하지만 그도 젊었을때는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걸까.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죽어서 땅에 묻혀있는지 오래다.
하지만 이제 너희들이 잘 들어보면 이 죽은이들의 속삼임이 들릴것이야
자 귀를 기울여봐, 들리니? 카르페 들리니?
카르페, 카르페 디엠. 오늘을 즐겨라.
인생을 독특하게 살아라.."
앨범: 김민기 4, 발매: 1993.05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나한테는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 거야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얼마 남지는 않았는데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보는거야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 아무 것도 아냐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저기 부러진 나무등걸에
걸터 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이봐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뒤돌아 서서 고함치거나
손을 흔들어 댈 필요는 없어
난 바람에 나부끼는 자네 옷자락을
이 아래에서도 똑똑히
알아 볼 수 있을테니까 말야
또 그렇다고 괜히 허전해 하면서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같은 것이 저며 올때는
그럴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p.s 1 김민기 옹의 '봉우리'는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붐비거나, 마음의 결정을 내리기 힘들때 자주 듣습니다.
제게는 큰 스승과 같은 노래입니다. '봉우리'에도 키팅 선생님의 가르침과 같은 '카르페 디엠'이 배어있습니다.
"친구여 바로 여기인 지도 몰라. 바로 여기인지도 몰라.." 김민기 옹의 나지막 목소리와 함께 '봉우리'의 노래말을 곰곰히 되뇌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p.s 2 오늘의 젊음을 다룬 3회 연속 연재 '청춘 시리즈'는 이번 part 3로 마칩니다. 미천한 필력에 넓지 못한 시각을 녹이려니 많이 힘에 부치네요^^ '반값 등록금' 투쟁을 외치는 많은 대학생들과 내일을 준비하고 있는 많은 청춘들의 건승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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