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1호선 시청역에 내려 동아일보 사옥으로 출근했다. 매끈하게 뻗은 광화문로와 깔끔하게 정리된 보도를 걸으며 사회인으로 첫발을 딛는 내 자신을 보는 게 흐뭇했다.
가장 뜨거운 7월의 뙤약볕 아래를 지나 출근하는 나날에 가장 뜨거운 현장을 나는 발로 뛰고 있었고, 비가 억수같이 창문을 때리는 날도 나는 그 길을 걸어 터벅터벅 퇴근했다.
싫지 않은 날들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종아리와 어깨 근육에 힘이 다시 들어차 있었다. 몸을 일으켜 세우는 정신은 어느 때 보다 빨리 깨어났다.
새롭게 만난 사람들, 인턴 친구들과 일선 선배들이 좋았다. 사람이 아직은 나에게 커다란 희망이기에 나와 다르지만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이유와 힘을 가진 그들이 좋았다. 나를 움직인 것은 그들이다. 고맙다는 말을 모두에게 하고 싶다.
일선 선배 기자들을 실제로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음이 큰 행운이었다. 솔직하고 겸손하고 재치 있고 부끄럼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동아일보를 지탱시키는 힘은 그들에게 있다. 그들의 노력은 이미 많은 부분이 희생으로 이어지고 있다. 신문은 그들에게 자신감 넘치는 상품이 아니다. 자신들의 노력과 부족함으로 자라는 작은 나무와도 같다. 고이고이 길러 내고 있음을 느낀다. 물론 모든 선배들이 그렇진 않다. 그렇지 못한 선배들은 나무를 고이고이 아끼는 선배들의 덕을 나중에 보게 될 것이다. 그 나무가 잘 자라나 준다면.
인턴 동기들, 참 좋은 친구들이다. 겸손하고 재치 있고 솔직하다. 그리고 젊디 젊다. 상한 음식을 먹어도 고운 똥을 쌀 친구들이다. 시원한 술 한잔 그리울 때 언제든 다시 만나 ‘위하여’ 외치고 어깨동무 하고 싶다.
싸돌아 다니는 걸 원래 난 좋아한다. 취재하며 발을 디딘 장소와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 기억에 꾹 박혀 있다. 만남과 설렘이 있는 현장, 슬픔과 분노가 들어찬 자리, 안타까움이 서린 장소. 그 곳에 모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어 좋았다.
27일 오늘 아침에도 1호선 시청역에서 내려 동아일보 사옥으로 걸어왔다. 손에는 반납해야 할 노트북과 출입증이 들려 있고, 날은 차분에게 내려 앉아 있었다. 머리가 빨리 깨지 않는다. 가장 뜨거웠던 여름날 새겨졌을 내 발자국을 찾아본다. 어느 덧 가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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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05.05.12 05:36
인턴 게시판을 훑어보다가 작년 여름 쓴 글을 다시 마주했다.
그 때 난 머리가 깨어나고 근육에 힘이 들어차는 느낌을 알았다.
술을 새벽까지 진탕 먹고, 필터가 새까맣게 타도록 마지막 담배를 빨아 당기고 잠 든 다음 날에도, 나의 몸은 미리 머리를 깨워놓고, 근육을 수축시켜 놓았다.
결론 못내리는 문제들로 지쳐버린 용량 달리는 머리를, 하루 종일 자장면 한 사발로 보상받은 몸둥아리를 왜 몸은 다시 그리도 다그쳤던가.
그건 아마도 현장의 존재감 때문일 거다. 아무리 하찮은 이익집단의 집회현장에도 평행선을 타는 논리의 싸움이 있었고, 그 이유는 절박했다. 대학생활동안 읽은 몇 권의 책과 단순 내 취향으로만 수집했던 정보들은 터무니 없이 빈약했다. 단순히 어디서 나온 누구라고 이름 석자 들이 밀었다간, 머리에 똥만 찬 놈이란 소리 듣기 딱이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고, 이해하려 해보지 못한 사람들의 자세는 난공불락이다. 정작 나부터 심드렁해지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난 반대를 위한 반대를 생각해 내기 쉽상이다. 그건 횡포다. 그렇지만 꼴같잖은 신문사 이름대며 난 대립각을 세우고, 부끄러움을 잊어가기 쉽상이다.
영화 <혈의 누>를 보면, (*스포일러 있음*) 박용우가 차승원에게 도도히 말한다. '너도 니 아비처럼 부끄러움을 모르고 살아라. 그 부끄러움을 칼의 위용 속에 묻고 살아라.'
차승원의 아비가 저지른 부끄러움 모르는 권력의 횡포를 차승원이 아들로서 대신 '정의' 들먹거리며 해결하려 하자 박용우는 한치 미동없이 그렇게 말했다.
결국 아비를 등질 수 없는 차승원은 미동없이 돌아선 박용우의 등에 한방의 화승총을 쏜다. 그리고 사건의 확대를 막기위해 남겨진 단서를 바다 위에 아무도 몰래 던져 버린다. 고립된 섬의 부끄러움을 바다위에 던져버리고 그는 다시 자신이 속한 부끄러움의 육지로 향한다.
부끄러움. 항상 인식해야 할 맘속의 규율이다. 누가 강제하진 않기에 법칙이 아닌 규율이다. 나 자신만 모른척하면 누구도 알 수 없기에 면죄부를 주기도 쉽고, 썩기도 쉽다. 그러기에 적어도 그 부끄러움을 최소한으로 가져가야 한다. 최소한의 부끄러움을 지니고자 하는 자세, 그 이상은 인간으로서 어렵다. 이해 역시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기 때문이다.
나중을 위해 이 글을 쓴다. 매일 운동을 하고, 술을 줄이고, 소식하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일상의 노력과 같이 부끄러움을 줄이기 위한 의지가 내 일상이 되길 간절히 바래본다. 워낙 게으르고, 순간의 감흥에 취해 사는 나이기에 이렇게 글이라도 남겨야 나중에 나와 내 친구들이 나를 꾸중할 수 있지 않겠나. 아무리 많은 시간 흐르고, 세상 모두 변해간다해도 거짓이 되지 않았음 하는 것들을 나와 내 친구들이 꼬치꼬치 들쳐내 주길 빈다.
p.s 분명 몇 사람, 이 글 읽고 태클 들이댈 것을 심히 예상해본다.
다들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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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12.07.06 15:36
난 저 시절보다 덜 부끄럽게 지금을 살고 있을까..
'부끄러움을 아는 자'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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