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금지의 원칙', 이 일반적인 법치가 적힌 판결문이 왜 이리도 오랜만이고 반가운지 모르겠다.
그것도 참여 헌법재판관 만장일치로..
'인터넷 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 위헌 판결은 '표현의 자유'와 '월드와이드웹'의 가치를 현재의 부작용보다는, 더 거시적인 미래의 성장가능성 측면에서 판단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큰 듯 하다.
특히 "'인터넷 실명제(본인확인제)' 제도는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판결문은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규제 최소화의 원칙'이라는 헌법적 법치를 재확인하는 출발점이다.
"표현의 자유를 사전제한하려면 공익의 효과가 명확해야 한다"라는 판단은, 너무나 상식적이지만, 그러나 너무나 아름다운 문장이다. 자연인에게 헌법이 보장하는 여러 권리들을 국가 혹은 제도의 개입으로 제한하려면 그 '공익적 효과'가 명확해야한다는 재확인이다. 특히 이 부분에서 주목할 표현은 '공익적 목적'이 아니라 '공익적 효과'라는 점이다.
그간 대부분의 국가 및 제도의 개입은 '공익적 목적'에 오히려 더 큰 방점이 있었다. '그 목적이 공익적이기 때문에(공익적이라고 국가는 판단하기 때문에) 그 효과 또한 반드시 사회에 이롭고 공익적인 것이다'라고 성급하게 기대하거나, 일반화하는 측면이 강했다.
'인터넷 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5년전 입법될 때만 하더라도 '인터넷 익명성'으로 인해 파생되는 사회적 부작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이를 제한해야 사회에 이롭다는 '공익적 목적'에서 발의됐고, 입법화됐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인터넷 실명제가 그 '공익적 목적'을 제대로 구현하기에는 그 효용성이 없다, 즉 '공익적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반론이 만만치않았다.
인터넷 상에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명백한 목적으로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범죄'를 저지를 정도의 사람이라면 자신 주민등록번호 걸고 실명 밝히고 그렇게 하겠는가. 구글에서 검색하면 수없이 쏟아지는게 그간 정보유출/해킹 사고/개인정보 불법 유통 등으로 새어나간 수백만 대한민국 국민의 주민등록번호다. 이 주민등록번호라는 한국의 특이한 국적 관리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없는한 실명제든 완전 실명제든, 실명제 할아버지를 도입하든지간에 끝없는 혼란이 반복되고, 사회적 비용을 축낼 것이다.
또한 "인터넷 게시판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인터넷 게시판을 운영하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의 언론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다라는 부분에서는 '정보통신서비스사업자의 언론의 자유'라는 측면을 강조한다는 점이 새롭다. 전통매체의 언론의 자유가 아니라 온라인/인터넷 매체의 언론적 기능과 역할, 그리고 자율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이이기하는 '언론'은 작게는 이번 위헌소송을 제기한 한 소송 축인 '미디어오늘'이겠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온라인 기반으로 활동하는 수많은 신생 매체 및 미디어 역시 그들의 온라인 플랫폼에서 전통 매체 못지않은 '언론적 권리와 책임'이 존재함을 확인시켜준다.
뿐만 아니라 "본인확인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 모바일 게시판,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 새로운 의사소통수단의 등장으로 본인확인제는 그 공익을 인터넷 공간의 아주 제한된 범위에서만 실현하게 되었다"라고 적시하는 부분 역시 대단한 사법 판단의 진일보다.
이건 법제도가 언제나 지적을 받는 '보수성'에 대해 사법부 최고의 판단기관인 헌법재판소에서조차도 그 점을 인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는 빛의 속도로 변하는데 법과 제도는 이전 잣대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수많은 시민들의 불만이 그 핵심이다.
이번 헌재의 판결문은 인터넷 실명제가 새로이 탄생하는 웹 서비스, 특히 모바일과 SNS 영역에는 그 공익성이 없다고 적혀있다.
또한 모바일과 SNS를 '새로운 의사소통수단'이라고 규정하는 부분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뉴미디어를 통해 많은 의사소통을 하고 있으며, 그 뉴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수많은 사회적 이슈가 발현하고 집단 지성을 기반으로 해소되는 '자유로운 표현' '사회 소통'의 장(場)이라는 점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많이 인용될 듯 하다. 특히 SNS와 관련한 사회적 부작용 등을 지적하거나, 이 서비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적 공방에 자주 등장할 표현이지 않을까 싶다.
'표현의 자유' '과잉금지의 원칙' '공익적 효과'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 언론의 자유' '모바일과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등 새로운 의사소통수단'.
이번 판결의 이 5가지 키워드 안에는 '월드와이드웹'과 '뉴미디어'의 미래가치에 대한 가능성과 기대, 그리고 그 사회적 책무가 담겨있다는게 우리 사회에 던지는 핵심 메시지인 듯 하다.
지난해 2011년 8월 6일은 월드 와이드 웹의 20번째 생일이었다. 스무살 성인이 된 월드와이드웹에 한국사회가 조금은 늦었지만, 묵직한 성인식 선물을 건넨 셈이다.
"20대 시절, 아마 지금껏 살아온 것보다 더 많은 방황과 좌절, 그리고 어려움을 겪겠지만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해 주길 바란다.
니 어깨 위에 짐지워진 세상의 기대와 우려가 무겁겠지만, 지금껏 잘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잘 해나갈거라고 믿어.
스무살 생일 축하한다, 월드와이드웹!!!!!!"
<판결문 요약본>
헌법재판소 사이트 원문 http://www.ccourt.go.kr/
헌법재판소는 2012년 8월 23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터넷게시판을 설치ㆍ운영하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 본인확인조치의무를 부과하여 게시판 이용자로 하여금 본인확인절차를 거쳐야만 게시판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본인확인제를 규정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제44조의5 제1항 제2호, 같은 법 시행령 제29조, 제30조 제1항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여 인터넷게시판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및 인터넷게시판을 운영하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의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
□ 결정이유의 요지
○ 본인확인제는 인터넷게시판에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등의 불법정보를 게시하는 것을 억제하고 불법정보 게시로 피해가 발생한 경우 가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확보함으로써 건전한 인터넷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서 그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을 인정할 수 있다.
○ 그러나, 인터넷게시판 운영자에게 게시판 이용자에 대한 본인확인조치를 하도록 하여 게시판 이용자가 본인확인절차를 거치지 아니하면 인터넷게시판에 정보를 게시할 수 없도록 하는 본인확인제는 아래와 같이 목적달성에 필요한 범위를 넘는 과도한 제한을 하는 것으로서 침해의 최소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 불법정보 게시로 인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 가해자 특정은 인터넷 주소 등의 추적 및 확인 등을 통하여, 피해자 구제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 의한 당해 정보의 삭제․임시조치(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 제1항, 제2항), 게시판 관리․운영자에 대한 불법정보 취급의 거부․정지 또는 제한명령(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 제2항, 제3항) 등으로 불법정보의 유통 및 확산을 차단하거나 사후적으로 손해배상 또는 형사처벌 등을 통하여 충분히 할 수 있다.
- 본인확인의 대상인 ‘게시판 이용자’는 ‘정보의 게시자’뿐만 아니라 불법행위를 할 가능성이 없는 ‘정보의 열람자’도 포함하고, 본인확인제 적용 대상인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 선정에 있어서 그 정확성과 기준이 불분명한 이용자수 산정 결과에 따라 적용대상의 범위가 정하여지는 등 본인확인제는 인터넷의 특성을 고려하지 아니한 채 그 적용범위를 광범위하게 정함으로써 법집행자에게 자의적인 집행의 여지를 부여하고 있다.
- 본인확인제에 따라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본인확인정보를 보관하여야 하는 기간은 정보의 게시가 종료된 후 6개월이 경과하는 날까지이므로, 정보를 삭제하여 그 게시를 종료하지 않는 한 본인확인정보는 무기한으로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 보관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 또한, 본인확인제는 아래와 같이 본인확인제로 인하여 게시판 이용자 및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입게 되는 불이익이 본인확인제가 달성하려는 공익보다 결코 더 작다고 할 수 없으므로 법익의 균형성 역시 인정되지 않는다.
-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헌법적 가치이므로 표현의 자유의 사전 제한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그 제한으로 인하여 달성하려는 공익의 효과가 명백하여야 하는데, 본인확인제 시행 이후에 명예훼손 등의 불법정보 게시가 의미있게 감소하였다는 증거를 찾아볼 수 없고, 국내 인터넷 이용자들의 해외 사이트로의 도피, 국내 사업자와 해외 사업자 사이의 차별 내지 자의적 법집행의 시비로 인한 집행 곤란의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어서, 결과적으로 당초 목적과 같은 공익을 실질적으로 달성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본인확인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 모바일 게시판,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 새로운 의사소통수단의 등장으로 본인확인제는 그 공익을 인터넷 공간의 아주 제한된 범위에서만 실현하게 되었다.
- 반면에 본인확인제로 인하여 인터넷 이용자는 자신의 신원 노출에 따른 규제나 처벌 등을 염려하여 표현 자체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고, 외국인이나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재외국민은 인터넷게시판의 이용이 봉쇄되며, 새롭게 등장한 정보통신망상의 의사소통수단과 경쟁하여야 하는 게시판 운영자는 업무상 불리한 제한을 당하고, 본인확인정보 보관으로 인하여 게시판 이용자의 개인정보가 외부로 유출되거나 부당하게 이용될 가능성이 증가하게 되었다.
○ 따라서, 본인확인제를 규율하고 있는 이 사건 법령조항들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여 청구인 OOO 등의 표현의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청구인 OOOOO의 언론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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